누군가 나에게 '배낭여행을 가려고 하면 뭐가 필요할까요?' 라고 물어본다면 아주 간단히 대답해줄 수 있다. 그거야 '배낭부터 챙기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배낭여행에서 배낭은 빠질 수 없는 로망이다. '배낭 없는 배낭여행은 말 없는 마차와 같다.' 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던 난 케리어가 편리하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일축했다. 등과 어깨로 전해지는 무게감은 정말 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손으로 질질 끌고 다니는 짐가방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배낭은 여행지에서 오랜시간 함께할 파트너와 같다. 배낭을 선택함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디자인은 물론이고 적절한 내구성과 사용의 편리함, 그리고 어깨와 등 위에서 무게를 어떻게 분산해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일단 겉에 주머니가 많은 제품은 편리해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디자인은 여행지에 따라서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윤리의식이 낮고 사람이 북적이는 관광지의 경우 소매치기가 활개를 친다. 귀중품을 보조 주머니에 넣어 놨다가는 귀신도 모르게 털리곤 한다. 일단 주머니가 난잡하게 달린 모델은 제외하기로 했다. 겉으로 보기에 심플하고 튼튼하면서도 내가 원할 때 입구를 열지 않고도 가방 제일 밑바닥에 있는 물건도 꺼낼 수 있는 제품이 필요했다. 배낭을 고르는데 이틀을 소모했다. 다행히 내가 원하는 제품을 찾을 수 있었다. 아웃도어 메이커에서 잘나가는 콜롬비아 신상품. 용량은 적지도 많지도 않은 45리터 제품이다.


 배낭 하나만으로는 여러 가지로 힘들었기 때문에 스포츠 백과 작은 손가방을 더 챙겼다.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손가방은 숙소에 짐을 놔두고 돌아다닐 때 사용하는 것이고 스포츠 백은 여러 기념품을 수납하기에 좋았다. 애초에 딱 맞춰서 짐을 챙겼기 때문에 기념품을 사면 집어넣을 자리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후에 공항에서 배낭의 무게를 재보니 짐 무게는 18kg 이상이었다. 뭐 군장보다 가벼운 수준이지만 체력이 없으면 소화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호주는 남반구에 위치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와는 계절이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겨울이면 그곳은 여름인 셈이다. 시차는 그리 크지 않다. 시드니의 시간대는 한국 시각보다 2시간 빠른 정도이다. 시차 적응에는 큰 문제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름옷을 여러 벌 챙겨가야 함은 물론이고 훗날 일정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겨울옷 또한 조금 챙겨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가방의 부피가 커지는 것은 당연했다. 최대한 정리정돈 해서 배낭을 꾸려야 했다. 가장 드물게 쓸 겨울옷과 바람막이는 가방 제일 밑으로 넣고 중간에는 깨지면 안 되는 여러 가지 무거운 것들이 들어갔다. 짐 챙기기 전에 미리 다이소를 돌며 여러 클리어 팩을 사왔기 때문에 옷가지의 종류끼리 분류해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 외에 챙길 것들은 여행안내서, 간단한 여행회화 책, 구급 약품, 선크림, 화장지와 물티슈, 수영복, 잠옷 수첩 필기구 등이었다. 여권사본과 대사관 연락처가 적혀있는 종이, 돈다발 등은 여러 곳에 분산시켜 놓아 분실에 대비했다. 혼자 여행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염두에 두어야 했다. 안전여행을 위한 준비는 모자라게 해서는 안 된다. 호신을 위해 항상 가지고 다니는 접이식 나이프를 가져갈까 하다가 공항경찰이 무서워 그만두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무르지 못한다. 마음속으로는 살짝 긴장하고 있었지만, 겉으로 태연하게 행동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 초조 흥분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머릿속을 휘돌았다. 최후의 만찬을 즐기듯 친구들을 만나 치킨을 뜯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밤새도록 침대 위에서 뒤척여야 했다. 준비는 끝났다.


 흘러가는 시간은 잡을 수 없고 결국 날이 밝았다. 나는 밥을 먹을 수 없었다. 혹시 모를 생리현상을 조절하기 위해 먹는 음식을 제한해야 했다. 장거리 여행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원주 터미널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에 탑승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어머니께서 동행해 주셨다. 앞으로 몇 시간 후면 난 낯선 세상에 홀로 던져지게 된다. 모험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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