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의 찬 공기를 가르며 공항버스는 고속도로를 나아갔다. 지난 일 년간 질리도록 다닌 도로였기에 바깥 풍경은 새로울 것이 없었으나 왜인지 특별해 보였다. 집을 나선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고 집으로 돌아와야 여행이 끝난다는 개념으로 살펴보면 나는 단순히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아닌 긴 여정의 시작 부분을 경험하는 중이다. 아마도 난 그렇게 느끼고 있는 듯했다. 사실 외국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어릴 적 2주간 미국 플로리다에 다녀온 적이 있다. 빠듯한 살림에도 나와 형의 경험을 위해 미국으로 영어캠프를 빙자한 여행을 보내주셨다. 당시 인솔자가 영어 학원 원장이자 나이 차이 많은 사촌 누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좋은 경험을 허락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어린 나이에 겪은 경험이 얼마나 기억에 남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디즈니랜드도 가보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생가도 방문했다. 긴 여정을 모두 기억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처음으로 다른 나라 느낌이라는 것을 두뇌 깊숙이 각인을 시킬 수 있었다. 그 후로 가끔 한국에서도 맡을 수 있는 미국냄새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나만의 특수한 향기가 되었다. 모든 것이 즐거웠던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번 여행도 많은 것을 느끼고 오리라 다짐했다.


 공항버스는 김포공항 국외선과 국내선 터미널을 경유해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재밌게도 이때까지 내가 입국을 김포 공항 터미널로 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인천공항의 구조파악에 열을 올렸을 뿐이다. 고질병인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는 버릇이 있는 나답게 바로 전날 어머니의 친구분을 배웅하러 이곳에 왔었다. 그리고 미리 어디로 가야 할지 동선을 알아두었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긴장도 미리 그때 다했기 때문에 마 내 집에 온 듯 움직임에 막힘이 없었다. 보통 공항에서 발권은 이륙 3시간 전부터 시작을 한다. 마침 거의 시간이 맞았기 때문에 무의미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만은 않았다.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하기 때문에 부스에 먼저 가서 줄을 섰다. 선착순으로 절차가 진행되니 먼저 가서 줄을 서는 것이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비결이다. 잠시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앞쪽에는 투명 플라스틱으로 된 큰 박스가 있고 그 안에는 기내에 갖고 들어갈 수 없는 물품의 예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흔히 알려졌지만, 나이프라든지 일정 용량 이상의 액체 그리고 라이터 등과 같은 인화성 물질들이 있었다. 어이없이 정말 큰 왕 라이터가 나를 웃음 짓게 했다. 저런 걸 정말 사용할 수는 있는 걸까? 어쨌든 내 차례가 돌아왔다. 집에서 프린트해온 항공권과 여권을 카운터의 직원에게 보여줬다. 직원은 가방에 위험물은 없나요? 등과 같은 통상적인 질문을 했고 여기선 당연히 없다고 대답했다. 전 세계 어딜 가던지 공통질문이고 여기서 실수하면 귀찮아진다. 기내에는 어느 정도 크기의 가방을 갖고 탈 수 있기 때문에 내 배낭만 화물칸으로 보냈다. 항공사나 항공권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화물의 무게는 20kg 이하까지 추가비용 없이 보낼 수 있고 그 이상이면 추가비용을 물어야 한다. 내 배낭은 모두 합해봤자 18kg으로 기준 아래였다. 화물의 무게는 공항 어딘가 존재하는 저울로 미리 재볼 수가 있으니 짐의 분배를 잘해낸다면 추가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위의 절차가 끝나면 이와 같은 탑승권(Boarding Pass)을 받을 수 있다. 간단히 탑승 시간과 탑승 게이트, 구역이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만 잘 알아 둔다면 대부분의 경우 문제없이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다. 하지만 공항의 사정상 게이트가 변경되거나 연착이 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표시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 공항에서는 항상 안내방송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가르침은 훗날 시드니에서 멜버른으로 향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아!, 예정 변경 대명사 제트스타여. 탑승권을 받았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아직 출국검사장이란 관문이 남아있다. 단지 그곳을 통과하면 한국이 아니게 되기 때문에 다시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어진다. 만약 배웅나온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이 있다면 안녕 인사는 이 전에 끝내는 것이 좋다. 출국검사는 몰리는 사람에 따라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최소한 탑승시간 한 시간 전에는 입장하는 것이 좋다. 


 집에서 아무것도 먹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공항 3층 식당가로 향했다. 과연 비쌌지만 어쩔 수 없다. 한국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이기 때문에 조금 비싸도 상관없는 기분이었다. 갈비탕을 맛있게 먹었는데, 이후에 고생 좀 했다.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머니를 배웅하기 위해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이미 어둑어둑해진 공항은 바람이 많이 불고 있었다.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공항 터미널에서 나홀로 생존이 시작되었다.


 손 흔들어 마지막 인사를 나눈 난 서둘러 공항으로 돌아왔다. 출국장 역시 먼저 들어가면 먼저 나오는 구조이기 때문에 미리 가는 것이 유리하다. 공항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을 잘 관찰해보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있다. 물론 공항 곳곳에 표지판이나 안내서가 있기 때문에 공항 이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출국장의 풍경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아마도 테러의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줄을 서 기다리며 간단한 출국카드를 작성한다. 미리 검은색 볼펜을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간단한 절차들을 통과하며 마지막으로 소지한 짐에 방사능을 끼얹으면 출입국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곳은 그 유명한 면세점이 있다. 면세점이라고 싸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기본값이 비싼 것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결코 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주변을 둘러보자 통신사 부스가 나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갔다. 무제한 로밍을 신청하기 위해서다. 만약 호주에서 첫날 스마트폰 개통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차선책이다. 변수가 많은 여행은 항상 차선책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루에 만 원이라는 비싼 요금이지만 사용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일단 신청을 했다. 이제 해외 자동 로밍으로 무제한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물론 통화요금은 별도다. 신청을 끝낸 후 주변을 조금 구경하다가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떠난다는 인사를 나눴다. 입으로는 잘 다녀오겠다, 걱정하지 마라, 떠들고 있지만 이미 머릿속은 혼란의 연속이다. 수많은 사람이 내 주변을 스쳐 지나갔고 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간혹가다 일부 사람들이 면세점 구경에 정신 팔린 나머지 본인 비행기의 탑승시각을 놓치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예정된 시간이 지나도 탑승하지 않은 승객이 있으면 항공사에서는 방송으로 그 사람을 호출하고 여러 직원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손님을 찾는다. 공항에서 손님을 찾는 방송은 흔하게 들을 수 있다. 단지 발음상의 차이 때문에 그 사람 이름을 본인도 잘 듣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방송을 주의 깊게 잘 들어야 한다. 위와 같은 사건 방지를 위해 탑승시각과 이륙시각에는 30분 정도의 간격이 존재한다. 만약 이륙시각을 벗어나 버리게 되면 비행기는 그 손님 짐을 꺼내 공항으로 돌려보내고 먼저 출발해 버린다. 간혹 짐을 안 꺼내고 출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주인은 놔두고 짐 홀로 여행을 떠나는 꼴이 된다. 비행기를 놓치고 울고불고 난리 쳐봐야 날아간 비행기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일등석 손님의 경우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 준다고 한다. 장거리 운행의 경우 30분 정도 늦게 출발해도 속력을 더 내서 예정시간에 도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일등석의 위력이다.



 출발시각이 다가오자 탑승 게이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멀었지만, 무빙워크가 있어서 힘들이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 내 앞에는 친구로 보이는 두 외국인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앞으로 몇 시간 후면 내가 외국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었다. 중간중간에 화장실이 있었기 때문에 잠시 들려 긴장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39번 게이트에 도착하니 유리 외벽 너머로 공항 활주로가 펼쳐져 있었다. 비록 어두워서 멀리까지 보이진 못했지만 가까운 부분에는 내가 타고 갈 OZ601 비행기가 밝은 조명 아래서 탑승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비행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이곳에선 별달리 할 일이 없으므로 탑승객 대부분이 멍하니 앉아있거나 동료와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고 아이들은 넓은 공간에 신이 나던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함의 연속이다. 공항 와이파이 신호를 잡아 인터넷을 보거나 그것도 지루해지 가만히 앉아 여러 가지 잡념을 떠올렸다. 비행기의 안전 걱정부터 어릴 적 보았던 구름 위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비행기의 가속을 얼른 느껴보고 싶어 두근거리기도 했다. 지루했던 시간이 끝나고 탑승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줄을 맞춰 섰고 나 역시 그 대열에 동참했다. 재미있게도 같은 시간에 다른 2대의 비행기도 같은 장소로 떠난다. 태평양 건너 남반구로 옹기종기 모여서 날아가는 비행기 편대라니 상상만 해도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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