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여행기들을 살펴보다 보니 국제선 터미널에서 시드니의 트레인을 타러 가는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천장 부근의 표시를 따라가라. 간결하고 깔끔한 지시였다. 사실 제일 처음 발을 옮길 때 천장의 표시를 따라 움직이긴 했다. 하지만 왜인지 건물 밖으로 나가게 되고 30분 동안 큰 원을 그리면서 주차장 주변을 맴돌았던 것이다. 아마도 외국이라는 긴장감에 시야가 좁아져 방향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일단 진정하고 한숨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건물 외부의 그늘진 벤치에 앉아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시드니의 날씨는 초여름 날씨다. 하늘에 구름이 낮게 깔려 다시 한 번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확신을 들게 했다. 비 덕분에 여름치곤 약간 시원했다. 내 복장은 비행기 안에서 미리 정리했기 때문에 반소매의 시원한 차림이었지만 무거운 배낭을 지고 돌아다녀 등이 땀에 젖어 있었다. 일단 땀이 다 식을 때까지 휴식 시간을 갖기로 했다. 옆자리에선 양복을 입은 일본인 두 명이 담배를 태우며 잡담을 나눴다. 지금까지 살면서 일본인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왜인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온통 백인들 사회 속의 동양인이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곳으로 오면서 일본 상공을 구경해서일까? 모를 일이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심기일전하여 여유를 갖고 움직이기로 했다. 나는 지금까지 시간을 버린 것이 아니라 공항 구석구석을 구경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인도에서 벗어나 차도로도 걸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구경거리 또한 자세히 볼 수 있지 않았겠는가? 아마도 배낭 여행객 중에 시드니 국제공항 터미널의 유료주차장을 구경한 사람은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스스로 칭찬을 해 본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니 시야가 넓어져 내가 가야 할 길이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 어찌하여 그토록 보이지 않았는지 웃음만 나온다. 공항 터미널 건물 내부의 오른쪽 복도 끝으로 가니 터미널로 향하는 길이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방법과 그냥 바로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는 방법 두 가지가 존재했다. 안내 데스크에서 트레인 맵을 하나 빼 들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이 트레인 맵이 상당히 유용한 아이템이다. 급행과 갈아타는 곳 등이 그림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직관적이고 시설 이용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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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로 내려가면 우리나라 지하철과 그다니 다르지 않은 모습이 보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원하고 널찍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벽의 화면에는 무슨 전동차가 언제 도착하는지 알려주고 자동 티켓 판매기도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매표소도 있기에 티켓 구입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물어보면서 티켓을 살 수도 있었다. 난 공대생의 호기심에 자동판매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 당시에는 사진을 찍지 못했기 때문에 훗날 찍은 사진을 미리 올려보면 이렇다.



 거의 공통적인 화면이다. 터치 패널로 되어있으며 화면 구성이 간단했다. 왼쪽에서는 티켓의 종류를 누르고 가고 싶은 장소를 선택한다. 그리고 탑승객의 종류를 선택하면 지불 방법에 대해 물어보는데 난 시범 삼아 체크카드로 결제를 해봤다. 다행히도 성공이었다. 은행에서 제대로 처리를 해준 듯했다. 메인 퀘스트 사이에 있는 달성 조건이랄까? 한고비를 넘겨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생긴 빨간색 티켓이 나오면 성공이다. 한국은 먼 구간을 갈수록 요금이 조금씩 추가가 되지만 시드니는 도심 근처에 위치한 공항이 제일 비싼 구조였다. 공항 정거장을 이용하면 그보다 먼 거리보다 요금이 많이 계산된다. 이후로도 계속 시내를 돌아다닐 때 계획 없이 편도 티켓을 뽑아 다녔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7일짜리 레일 패스를 뽑아서 다니는 게 더 경제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하철의 이용방법은 한국과 다르지 않다. 저 티켓을 개찰구에 넣어서 통과하면 끝이다. 일단 내가 가야 할 곳은 Burwood의 숙소다. 공항에서 버우드로 가려면 Central 역까지 간 후 환승을 해야 한다. 도심 방향으로 가는 플랫폼에 내려가 잠시 의자에 앉아 전동차를 기다렸다. 이미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승객들이 없어 플랫폼은 한산했다. 잠시간의 기다림 끝에 나타난 전동차는 놀랍게도 2층으로 되어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시드니 전동차 낡고 부실하다고 리뷰가 되어 있었는데 그새 신형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차체의 모습은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즐거움을 주었다.





 파란색 좌석은 재미있게도 등받이 부분을 밀어서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보다는 기차와 같은 느낌을 주는 전동차다. 그리고 처음에는 지하철인 줄 알고 있었지만, 구간 대부분은 지상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Train이라고 불렸다. 시드니는 서울에 비하면 도시가 그리 크지 않고 인구대비 땅도 넓어서 그런지 지하로 노선을 팔 이유가 없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좌석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곧이어 정신없이 노선도를 보고 가는 길을 분석을 했다. 센트럴 역에서 빨간색 노선을 타면 버우드로 금방 도착이 가능해 보였다. 전동차는 국내선 터미널을 지나 두 정거장을 더 간 후에 센트럴 역에 도착했다. 과연 수많은 노선이 모이는 구간답게 규모도 크고 플랫폼도 많았다. 빨간색 Northern Line 플랫폼을 찾아가는데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구조를 파악한 다음에는 어디든 못 갈 곳이 없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열차는 금방 도착했고 곧이어 난 내 목적지인 버우드로 가는 전동차에 올라탔다. 이제 숙소까지 불과 두정거장이다. 좌석에 앉아서 머릿속으로 여행자 숙소의 체크인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던 중에 어디선가 한국말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살펴보니 젊은 여성분이 한국어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과연 시드니. 한국사람이 많기로 소문난 곳답다. 아마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 중 절반이 한국사람일 것이다. 물론 나머지는 중국사람이겠지. 중국 사람은 정말 어디를 가든 있었다. 후에 들었지만 버우드 바로 옆의 Strathfield에 코리아 타운이 있다고 했다. 바로 옆이라 그런지 한번도 가보진 못했지만 버우드라고 한국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버우드역에서 내려 역사 밖으로 나왔다. 내 눈앞에 펼쳐진 거리의 모습이 이랬다. 낮고 각자 개성이 있는 건물 깔끔한 도로, 흙이란 존재하지 않는 정갈한 보도블록,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쓰레기 더미 따윈 존재하지 않는 청결함에 놀라 웠다.  이제야 내가 정말 다른 세상에 와있구나! 실감하게 되었다. 언젠가 영화에서만 봤던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비가 내려 정말 상쾌한 기분으로 거리를 걸었다. 물론 방향은 구글맵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한국에서처럼 거리를 걸을 때 이어폰을 낄 필요도 없었다. 자동차 소리, 사람들이 말소리, 날아다니는 새의 지저귐, 이 모든 것이 나에겐 흥미로운 음악이었다. 정말 즐거운 기분이었다. 자연스럽게 내 발걸음은 가벼워만 갔다. 웬 등에 짐은 잔뜩 진 녀석이 싱글벙글 웃으며 거리를 걷는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행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편의점 위치라던가 음식점 위치를 확인하며 꾸준히 숙소로 행했다. 걸어서 10분만 걸어가면 된다. 난 길고 긴 여정 속으로 한걸음 더 깊숙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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