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의 줄은 먼저 서나 늦게 서나 어차피 다 타야 떠난다. 느긋하게 행동해도 중간쯤에 위치할 수 있었고, 아직도 다수의 사람이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다 지친 몸을 쉬고 있었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라서 그런지 역시 대부분 사람이 한국인이었다. 시드니로 가는 외국인과 한국인, 아이부터 노인까지 각자의 상념을 갖고 출발을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겨울휴가를 떠나러 어떤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겠지. 내 앞에 있던 젊은 여인이 비행기 타기 전 마지막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매우 유창한 영어로 본인의 남자친구라 생각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이제 출발한다.'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남의 사생활이니만큼 그냥 듣기평가 하는 심정으로 흘려 듣고 있다가 퍼뜩 잊고 있던 생각이 떠올랐다. 음……, 그곳에서는 영어를 써야 하는구나……. 전형적인 한국의 영어교육을 받아왔고 평균적인 영어 실력을 지니고 있던 나. 간단한 말 밖에 할 줄 모른다. 이제야 다가오는 언어의 압박. 머 설마 굶기야 하겠어? 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진정시켰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비행기에서 있을 동안 여행 영어 회화책을 조금 살펴보자고 생각했다.


 게이트 입구에서 승무원들이 티켓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까 발권을 하며 받았던 보딩 패스(Boarding Pass)를 보여주면 바코드를 찍어 탑승했다는 기록을 전산으로 처리하게 된다. 잘 모르면 그냥 앞사람 하는 거 보고 따라가면 되는 단순한 시스템이다. 줄지어 조금만 이동하다 보면 비행기 입구에 들어갈 수 있다. 입구에 들어가기 전 신문이나 비행기용 이어폰 등을 챙길 수 있으나 귀찮으면 그냥 지나쳐도 상관없다. 나이키 스포츠 백을 들쳐 메고 비행기 입구로 들어섰다. 입구 바로 안쪽의 승무원에게 다시 티켓을 보여주면 친절하게 어디로 가면 된다고 안내를 해 준다. 보통 비행기의 통로는 2개로 되어 있고 좌석은 3부분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미리 알아보지 않으면 귀찮아지기 마련이다. 내 위치는 38A로 창가 쪽이다.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위치라 많은 사람에게 선호되곤 한다. 물론 화장실을 갈 때는 옆 사람의 동의를 얻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조금은 귀찮은 자리이기도 하다. 딱히 좌석 위의 수납공간으로 올릴만한 짐은 없었기 때문에 가방은 의자 밑에 두기로 하고 좌석에 앉았다. 얇은 베개와 담요가 준비되어 있어 요긴하게 쓸 수 있어 보였다.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비행기의 좌석은 거의 가득 찼다. 놀랍게도 이 시간에 시드니로 향하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많을 줄은 몰랐다. 전문용어로 '풀방'이다.


 모든 승객이 탑승한 것을 확인한 비행기는 곧 문이 닫히고 조금씩 활주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재미난 광경을 그냥 가만히 흘려보낼 수 없기에 창을 열어 확인했지만, 날은 이미 저물어 밖의 모습은 어둠과 밝은 공항건물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래도 아름답다고 소문난 인천공항의 모습은 나름 장관이었다. 그 사이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안전교육을 시행하고 있었다. 앞쪽의 모니터로 준비된 영상을 틀고 그 설명에 따른 동작을 보여 주었다. 많은 연습과 실전이 있었던 듯 매우 능숙한 움직임이다. 구명조끼 사용방법이라든지 탈출방향과 비상 착륙 시 안전한 자세 등을 교육받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아시아나 항공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불시착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인지 승무원과 승객들 모두 진지했다.


 교육이 끝나고 안전 벨트를 착용하면 활주로에서 대기 중이던 비행기는 이륙을 시작한다. 엔진의 굉음이 점차 커지고 고음역으로 바뀌어 가면 곧이어 어마어마한 가속이 내 몸을 시트로 짓누른다. 그 속도감과 진동은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을 들게 한다. 속도가 한계에 다다르면 동체의 앞부분이 들리면서 공중으로 떠오른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느낌이 들면 이미 비행기의 동체는 공중으로 떠오른 상태이다. 살면서 이 정도의 가속을 느낄 기회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 느낌 평생 간직해도 좋다. 엔진의 배기음 소리가 날카롭게 들리고 진동이 줄어들면 이륙 성공이다. 곧이어 동체는 선회하며 방향을 잡고 그 사이 난 지상의 모습을 옆의 창으로 구경할 수 있었다. 땅을 옆에서 바라보다니 재밌는 경험이다. 검은색의 공간에 뿌리 내린 빛의 도시가 그곳에 있었다. 아름다운 빛이 흩뿌려진 모습이었다. 먼 미래 인류가 우주의 공간으로 진출을 하고 우주도시를 완성하면 볼 수 있는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혈관을 지나가는 혈액의 모습처럼 빛나는 도로 위를 달리는 움직이는 빛의 알갱이 모습도 보였다. 물론 바다엔 아무것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기수는 남쪽으로 돌려지고 지상에 있는 여러 도시를 지나치고 있었다.



 이제 이 비행기는 10시간을 꼬박 날아가야 시드니에 도착할 수 있다. 앞쪽의 모니터에는 현재 속도와 고도 위치 비행시각과 남은 시간 등이 표시되고 있었다. 매일 땅에서 올려다보던 비행기에 내가 타고 있다니 기분이 새로웠다. 안전 벨트 착용 등이 꺼지고, 길고 지루한 비행시간을 달래줄 여러 물건을 꺼내 정리하던 중 부산 상공을 날아가고 있는 표시가 모니터에 나타났다. 창을 열어보니 과연 부산일지도 모를 도시가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었다. 밤의 촬영은 초점을 맞추는 데 어려움이 있어 이 정도도 겨우 찍을 수 있었다. 조금 더 찍으려 했지만 이미 시야에서 멀어져 버렸다. 저 도시는 아마도 부산이겠지? 부산을 마지막으로 한국땅에 안녕을 고하고 잠시 후 비행기는 우리나라를 벗어나 일본의 영공에 들어갔다. 모니터에 대마도를 지나, 나가사키와 가고시마를 위를 날고 있다는 표시가 보였다. 다시 한 번 창을 열어 그 모습을 감상했다. 무슨 도시인지는 모르지만 마치 은하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비행기 속도로 보니 일본땅이 상당히 가깝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는 계속 나아가 태평양에 들어서고 곧 까만 허공만이 보였다. 나는 창을 닫고 영어회화 책이나 호주 여행서적 등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예상보다 내부의 소리가 엔진음으로 시끄러웠기 때문에 귀를 막을 필요가 있었다.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음악을 들으며 책으로 눈을 돌렸다. 배터리를 아껴야 했기에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사용을 자제했다. 여행책자의 시드니 볼거리에 막 빠져들 때쯤 주변이 소란스러워 이어폰을 빼고 앞을 바라보았다. 아시아나 항공이 외국인들을 위해 준비한 전통 혼례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다. 물론 진짜 결혼은 아니고 승무원이 복장을 갈아입고 통로를 돌아다니고, 화면에서는 그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본인들의 모습이 재밌는 듯 승무원들의 입은 시종일관 웃음꽃이 피었다. 외국인들도 물론 좋아하며 같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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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밤 잠을 편히 자지 못했기 때문에 금세 잠이 들어 버렸다. 한참을 자다 일어나보니 4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지금쯤 태평양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고도 33,000피트 약 10km. 900km/h를 웃도는 빠르기로 날아온 지 8시간이 지났다. 어느덧 해가 뜨려 한다. 바깥기온은 영하 50도. 밖을 보았더니 세상이 밝아지고 구름 위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창에는 물방울이 얼어붙어 있었다. 그 추위를 짐작게 했다. 갖가지 모양의 아름다운 구름의 모습들을 감상하고 있으니 잠시 후 해가 떠올랐다. 눈이 부셔서 창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왼쪽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니 확실히 나는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잠시 후 기다리던 기내식이 나왔다. 둘 중에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당연히 서양식을 선택했다. 먹거리부터 적응해 보자는 생각에서다. 오믈렛의 맛은 밋밋했으나 푸딩과 빵이 맛있었다. 즐겁게 식사를 하고 콜라도 들이키며 영양보충을 끝냈다. 이제 몇 시간만 더 기다리면 시드니에 도착한다. 괜스레 아이팟에 토익 듣기를 재생 시켜보기도 하며 벼락치기 영어 학습에 막판 스퍼트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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