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의식주'다. 옷은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고, 음식은 생명유지에 필수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요소인 집이 주는 효과는 심리적, 신체적인 안전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몸의 긴장을 풀고 피로를 해소할 수 있게 해 준다. 예로부터 외부의 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답답함을 주지 않는 편안한 집은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고대의 왕족은 말할 것도 없고 현대의 부자들 또한 높은 담을 쌓고 경비원을 두어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그만큼 안전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집은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 말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도 그 개념은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고 외풍이 잦은 방에서 잠을 잔다고 상상을 해보자. 과연 안심하고 쉴 수 있을까? 자칫 하다간 모든 여행 일정을 망치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따지면 시드니에서 제일 처음 묵었던 이 숙소는 모든 여행 기간 중 최고의 숙소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버우드 지역이면 중국계 이주민이 많이 살고 치안이 약간 불안하기로 알려졌지만, 오히려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유흥가도 없고 저녁만 되면 거리는 한산하기만 했다. 또한, 주변이 주택 지역이라 평소에도 조용함이 계속되는 그야말로 편안히 쉬기 적당한 지역이라 할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편안한 휴식과 잠자리를 원한다면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싸고 질 좋은 숙소는 찾기 힘들지만 적당한 가격에 질 좋은 숙소는 많다. 가격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좋은 경험 하러 멀리까지 여행 와서 돈 몇 푼 아껴보겠다고 싼 숙소를 잡았다가 더 큰 희생을 치를 수 있으므로 잘 선택해야 한다.
내가 처음 시드니에서 만나본 이 숙소를 처음 도착했을 때 그러했다. 가정집들 사이에 위치한 이 숙소는 처음 봤을때 과연 여기가 숙박시설이 맞을까 잠시 머뭇거렸다. 마당은 잔디밭이 깔려 있었고 건물 외관은 마치 무슨 정부 사무실을 보는 듯 했다. 깔끔한 2층 구조로 되어있는 그 건물 현관은 자동으로 잠기기 때문에 전자키가 있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현관에 들어서자 바로 보이는 안내 데스크 옆쪽 복도의 유리창 밖으로 수영장이 있어서 투숙객들이 자유로이 수영을 즐길고 있었다. 건물이 도넛츠 구조처럼 생겼기 때문에 수영장에서 외부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 옆에는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도구도 준비되어 있었다.
안내 데스크로 가서 예약을 했다고 말하고 신원 확인을 한 뒤 체크인을 했다. 곧이어 책임자로 보이는 인상 좋아보이는 아저씨가 마이프렌 하면서 친절하게 직접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시설이용에 관해 설명해 줬다. 원형 복도 중심으로 주방이나 거실같은 공용시설이 있었으며 지하실에는 세탁실과 헬스장이 있었다. 이층에는 발코니가 있어서 바람을 쐬며 책을 읽거나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며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나는 혼자서 여행했기 때문에 자주 이용하지는 못했지만 만약 기회가 된다면 다음번에는 동료들과 같이 와서 즐기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실은 보통 2인실이 기본으로 되어 있다. 혼자 지내고 싶으면 2인의 비용을 내고 혼자서 2인실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더블과 트윈의 선택사항이 있는데 더블은 커다란 침대가 하나이고 트윈은 침대 두 개가 있다는 뜻이 된다. 내가 선택한 방은 트윈룸이었기 때문에 침대 두 개가 있었다. 그리고 침대 하나 크기가 혼자 누워도 남을 정도로 컸다. 침대에 들어가 팔다리를 쭉 뻗어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이불 역시 묵직해서 참으로 내 취향이라 할 수 있었다. 침대 옆에는 간단한 싱크대와 전자레인지, 작은 냉장고가 있었고 화장실 또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이 화장실은 2인실의 특권이기도 했다. 다인실을 이용하는 경우 화장실과 샤워룸은 객실 외부 공동공간에 있었다. 이런 건 방 안에 있는 것이 훨씬 편하다. 책상에는 와이파이 사용방법과 암호 그리고 숙박 규정 등이 적혀있는 안내서가 코딩되어 있었다.
솔직히 임박해서 아무 숙소나 예약을 잡은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퀄리티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대박이 아닐까? 다시금 이런 숙소를 골라준 꽁양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어쨌든 첫 번째 퀘스트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호주 여행이 첫 시작은 공항에서 빼고는 시작이 좋다고 생각되어 기분이 좋았다. 방에서 머물기 위해 일단 차곡차곡 짐을 풀었다. 옷들은 잘 정돈해서 옷장에 넣어두고 책상에는 앞으로 여행계획을 위한 여러 가지 책을 빼서 정렬했다. 짐 정리가 끝나자 일단 티비를 틀고 침대에 누워 잠시 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긴장했을 심신을 달래는 중요한 의식이기도 했다.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틀어보니 대략 열가지 정도의 채널이 나오고 있었다. 더 많은 채널을 원하면 거실의 큰 티비를 이용하라는 직원의 말이 떠올랐지만, 어차피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거 무슨 상관일까. 그냥 대충 뉴스 채널에 고정했다. 곧이어 호주 특유의 억양이 들리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서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 봤다. 일단 당장 오늘 먹을 음식이 필요했고 여행자용 전원 어댑터가 필요했다. 호주의 콘센트는 한국과 달라 구멍이 3개로 되어 있고 240v를 사용했다. 전자기기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꼭 어댑터가 있어야 했다. 오다가 들린 작은 구멍가게에서는 없었기 때문에 큰 마트에 가보기로 했다. 구글 맵으로 호주에서 잘나가는 대형마트 울월스(Woolworths)를 검색해보니 아까 지나온 버우드 역에서 잠깐만 가면 되었다. 생각이 난 김에 거리 구경도 할 겸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설 때 주의할 점은 전자 카드키를 꼭 잃어버리지 말고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밖에서 문을 열 수 없으니 항상 몸에 지니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다.
밖으로 나서니 구름이 개어 맑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주의 날씨는 변덕스럽다고 누군가 그러던가? 눈 부신 햇살이 피부에 닿으니 역시 여름의 열기가 느껴졌다. 내 잃어버린 여름휴가를 고향에서 8,000km 떨어진 이곳에서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절로 노래가 흥얼거렸다.
아까 걸어왔던 길을 반대로 걸어가다 만난 노란색 건물이다. 과연 저 건물은 뭘 하는 곳인가? 잠시 검색을 해봤더니 약국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건강보조제 대형할인매장 정도라 칠 수 있다. 건강 보조제의 천국이라 불리는 호주는 정말 각양각색의 제품들이 팔리고 있었다. 난 보조제에 관심이 없다 보니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내부에는 약통들이 빼곡히 진열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호주답게 티비 광고의 상당 부분을 운동 보조기구가 차지하고 있었다. 근육 불끈, 몸매 좋은 남녀들이 육체미를 뽐내며 상품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은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게 건강에 신경 쓰는 호주인들의 평균수명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열심히 걷고 또 걸어 울월스에 도착을 했다. 과연 대형마트답게 각종 제품을 팔고 있었다. 전체적인 모습은 한국의 마트들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편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과연 무슨 제품이 있을까 구경하던 난 아시안 푸드 코너에서 익숙한 것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사람이라면 다 좋아한다는 푸라면과 새우깡, 양파링이다. 한국사람이 많은 시드니답게 한국 음식도 당당히 한 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고향의 그리움이 느껴질 때 하나씩 먹으면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오늘 먹을 간단한 식량을 먼저 골랐다.
내 장염은 물이 문제인 듯하니 좋은 물을 고르고 익숙한 과자와 라면을 골렸다. 속을 달래는 데는 익숙한 것이 최고다. 마트를 한 바퀴 도는데 십여 분이 지났던 것 같다. 대충 어느 위치에 뭐가 있는지 알았기 때문에 쇼핑 처음의 목적은 달성했다. 이곳 마트의 위치는 역과 가까우므로 어디 놀러 나갔다가 와서 잠시 들렀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코스가 머리에 그려졌다. 훌륭한 위치선정이다.
계산대에는 유인 계산대와 무인 계산대가 있었다. 기계에 호기심이 많은 나는 자연히 무인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해봤다. 간단한 절차만 따르면 손쉽게 계산을 마칠 수 있었고 옆에서는 직원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르는 상황이 생기면 도움을 요청해도 문제없다. 이 건물은 마트뿐만 아니라 사진관, 통신사 매장, 의류 매장, 신발 가게 등도 다 같이 있는 작은 쇼핑몰과 같았다. 대부분 것들은 이곳에서 구할 수 있으니 손님이 끊이지 않고 모여들었다. 볼거리도 경험할 거리도 많지만, 일단 내일 일정 계획을 위해 얼른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 어디를 갈지 정하느라 책상이 온통 어질러 졌다. 배고프면 옆에 있는 과자를 먹고 냉장고에 음료수를 꺼내 마시며 계획에 몰두했다. 시드니는 작은 도시지만, 구경할 것들이 많이 있어서, 책으로 보며 내일 직접 찾아갈 생각을 하니 저절로 즐거워졌다. 이리저리 구상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졌다. 피곤하기도 하고 시차 역시 한국보다 약간 빨랐기 때문에 일찍 졸음이 몰려왔다. 공용 거실에서는 파티가 열리는 듯 시끄러웠지만 난 내일을 위해 꿈나라로 떠나기로 했다. 푹신한 침대가 편하기 그지없었다.
참 신기했다. 어제까지는 겨울인 한국에 있던 내가 오늘 이렇게 여름 날씨의 호주에 있다는 것이 말이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하늘과 한국의 친구들이 보고 있는 하늘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니 그 어마어마한 거리감이 내게 다가왔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언제든지 소식을 전하고 받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가만히 오늘 있었던 일을 되새기며 잠이 들었다. 그렇게 호주에서의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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