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밟기는 택견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동작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응용동작이 있는데 특히 다른 무예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필자가 대학교 2학년 시절(1982년)에 처음 택견을 접하였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전통무예(傳統武藝)인 택견의 동작은 옛날부터 전수(傳受)되어 내려온 것인 만큼 매우 우아하게 천천히 움직이면서 아주 신비한 요소가 강할 것이라고 추측을 했었다.

평소에 중국무협(武俠) 영화를 즐겨본 탓도 있었겠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동양(東洋)무예가 위엄 있게 천천히 움직임으로써 어떤 알 수 없는 내공(內功)의 힘(氣)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신비한 성향이 있어 왔던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렇게 일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평범한 기대를 가지고 찾아뵈었던 송덕기 옹께서 필자에게 보여주신 택견의 동작은 기대 수준을 훨씬 못 미치는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우아하고 신비롭다기보다는 무슨 춤 같기도 한 것이 흐느적거리면서 영 볼품이 없는 모습이었다(적어도 어린 필자의 첫 느낌은 그랬다). 특히 동양의 다른 무예에서 흔히 볼 수 있는'기마식(騎馬式)'이나 '전굴자세(前屈姿勢, 태권도의 앞굽이)' 같은 기본 보법이 전혀 없음은 물론이고 허리에서 주먹이 나가야 한다는 동양무예의 기본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필자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독특함이 반드시 우수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택견이라는 무예가 지금까지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무예의 기본적인 상식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독특한 구성원리를 가지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들의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품밟기'라는 하는 택견만의 독특한 기법 때문인데, '품밟기'는 독특하다는 민족적 특성 이외에도 격투기법으로서도 상당히 발달 된 것이라는 걸 비록 뒤늦게 이긴 하지만 곧 깨달을 수 있었다. 필자는 아주 어려서부터 여러 형태의 무술 수업을 받아 왔고 당시도 대학에서 태권도 선수로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격투기(格鬪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었는데, 품밟기는 기존의 다른 무술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아주 발달된 형태의-현대적 투기종목에서나 볼 수 있는-뛰어난 스텝(Step) 이었던 것이다.

중국(中國)의 쿵푸(功夫)나 일본(日本)의 가라데(空手) 등의 동양무술은 물론이고 서양의 대표적 격투기인 복싱(Boxing) 또한 1960년대까지는 양발의 간격을 넓게 벌려 몸의 중심을 낮게 함으로써 안정된 자세(Balance)에서 힘을 발산시키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는데, 비례하여 그 만큼 몸의 움직임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권투의 천재로 불리우는 헤비급 세계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가 주장한 가벼운 스텝(Step,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과 액션 스타의 대명사인 '이소룡(李小龍)'을 비롯한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여러 투기(鬪技) 스포츠 연구가들에 의해 1970년대를 기점(起點)으로 하여 보다 빠르고 정확한 파이팅(Fighting)이 요구되어지면서 현대와 같이 빠른 형태의 격투 방법을 지향하게 되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권투는 물론이고 태권도나 중국의 전통무술인 우슈(武術)마저도 겨루기에서는 가벼운 스텝으로 몸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스타일로 바꾸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1910년대인 구한말(舊韓末) 이후로 일제(日帝)의 탄압에 의해 거의 절멸의 위기에 까지 놓여 전혀 변화와 발전의 흐름을 탈 수 없었던 택견이 이미 현대의 무술에서나 볼 수 있는 빠르고 경쾌한 움직임을 갖게 하는 '품밟기'라는 훌륭한 스텝이 있음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며 다시 한번 뛰어난 우리 민족문화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옛날부터 이렇게 품을 밟았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럼, 택견의 동작은 재게(빠르게) 해야만 해, 재지 않으면 상대에게 금새 걸리거든. 그래서 품밟기가 택견의 생명이야!"
라고 일러주시며 90이 가까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 하시고 몸을 가볍게 쓰시는 스승님의 몸짓은 영원히 잊지 못할 택견의 추억이 되었다.

또한 택견을 수련함에 있어 갖는 마음자세가 동작의 연결과 부드러움을 이루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본의 무도(武道)처럼 사무라이(日本武士)적인 비장한 각오를 하고서야 택견의 선비적인 넉넉함과 부드러움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중국무술의 부드러움은 택견의 여유와 굼실거림과는 또 다른 것이다.

택견의 동작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의 선조들이 지녔던 그 멋과 흥을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 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 노력하여야만 한다. 요즘 들어 택견을 새롭게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 아주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자신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타 무예에 대한 속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옷만 갈아입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운 경우가 종종 있다. 택견의 동작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품밟기'를 알아야하고, 그 때 반드시, 아주 반드시 이해하여야만 하는 것은 우리민족의 문화적 속성을 알아야만 '품밟기'를 나아가 택견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모르고 기존의 무예적 사고(일본류나 혹은 중국류)나 서구적인 체육학적 접근방법 등으로 연구하는 것은 택견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택견이라는 명분으로 새로운 무술을 창안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깨달아야만 한다. 필자가 택견을 처음 배울 때 '품밟기'만을 6개월 가까이 수련하였는데 스승님께서는 단 한번도 「품밟기를 수련해라」또는 「훈련해라」는 등의 표현을 쓰지 않으시고 항상,

"어디 한번 품 놀아 봐라!"

라고 하셨다. 상대화 겨룸을 전제로 하는 심각한 무예 수련에서는 생각하기 쉽지 않은 「놀아본다」는 표현은 우리 민족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와 넉넉함이라 본다. 힘있게 움직이는 것이 강할 것 같아 힘차게 움직이는 제자들에게,

"욱하다. 욱해(강하다). 욱하면 느려지고 상하기 쉽다!"

며 부드러움과 느긋함을 강조해주셨던 스승님의 가르침이 그때는 머리로만 이해되었지 몸이 따르지 못했었는데, 이제 몸으로 느끼게 되니 그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철학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깨달음은 필자가 현대화(現代化)라는 명목의 서구적이며 과학적이라는 기존의 사고를 버리고 전통문화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우리 민족의 철학과 문화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품밟기는 일부 학자 및 무예가가 일부 자료를 근거로 제시한 것처럼 경기 규정이 아닌 자유로운 움직임(Step), 그 자체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아랫배를 내민다든가 움직임의 흐름을 끊는 '품밟기'는 무예의 견주기 스텝으로서의 가치를 결여하고 있다. 송덕기 스승님의 택견의 품밟기는 10여 가지의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전후 좌우, 솟구치기, 회전 등 무예적 기법과의 연결성을 중요시한다.
반드시 삼각형으로 밟아야 한다든가 오금질(무릎의 굴신)을 해야한다는 규정도 없다. 다만 움직임의 부드러움을 쌓게 하여 지구력과 동작의 다양한 연결을 향상 시켜주고 공방(攻防)의 묘를 일깨워주며, 궁극적으로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정지한 상태에서도 내적인 탄력을 표출하기 위해서 수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택견에서는 왜 품밟기를 하느냐?

위에서 언급한대로 그 첫 번째 이유는 품을 밟음으로써 발바닥의 지압효과, 오금의 탄력 증대, 하체 근육의 강화,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통해 아랫배에 두둑한 뱃심을 쌓는 일종의 '양생건강운동(養生健康運動)'을 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것이 처음부터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품밟기라는 동작을 하다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품밟기의 효용만큼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이므로 뱃심을 쌓기 위한 방편 중의 하나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둘째는 품밟기는 굼실거림을 통하여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몸 전체의 움직임의 흐름을 잡아주어 택견의 기본적인 몸 사위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품을 어떻게 노느냐에 따라 그 택견꾼의 몸놀림이 좌우되고 그 택견꾼의 공방에 대한 성향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그라고 셋째로는 이 셋째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되는데 상대의 하체 공격을 용이하게 피하기 위해서이다. 상대가 하체를 공격하지 않고 얼굴만 공격해 오는데 품을 밟으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는 셈이다. 그러니까 권투에서 상대의 상체 공격을 용이하게 피하기 위하여 몸을 좌우로 흔들며 상대의 주먹을 피하듯이 택견에서는 상대의 하체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다리를 움직여 품을 밟는 것이다. 상대의 하체 공격이 단순히 걸거나 미는 수준이라면 굳이 그렇게 요란히 품을 밟을 필요는 없지만 안 피하면 다리에 큰 충격이 오는 만큼 재빠르게 다리 공격을 피해야만 하는 것이다.

택견시합에서 하체의 타격공격을 금하는 단체도 있는데 그건 택견을 하지 말라는 얘기인 셈이다. 스승님은 하체를 잘 까야만 한다며 항상 하체 공격을 중심으로 가르쳐 주셨는데 하체를 차지 말라면 택견을 하지 말라는 얘기와 뭐가 다른가? 택견이 어떤 원리와 어떤 규칙을 가지고 행해졌는가에 그 무예의 본질이 나오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똑똑한 두뇌로 택견을 변화시킨다면 그건 발전이 아니라 그 사람의 창작품인 것이다.

끝으로 여기서 필자가 정리한 10개의 '품밟기' 형태는 분명 스승님께서 지도해 주신 것임에도 불구하고 스승님께서는 오직 '품밟기'라는 하나의 명칭만을 사용하셨다는 것을 일러주고 싶다.

그 이유는 스승님께서 구체적으로 기술의 명칭을 일러주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품을 밟고 있거나 견주기를 하고 있으면,

"품을 옆으로 쭉쭉 째지게 밟아야지!(그래서 '품째밟기'라는 명사형으로 필자가 명칭을 만들었다)"

혹은,

"오금을 굼실거리며 계속 그렇게 흔들면서 재라!(흔들며 밟기)"

"아-, 그때는 헛밟어서 유인을 해야지!(헛밟기)"

라는 식으로 가르쳐 주셨고 필자는 스승님의 그러한 가르침을 명사형으로 바꾸어 놓은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스승님이 지도해 주신 '품밟기'는 오직 하나이기도 하고 또한 수 백가지 이기도 한 것이다.


출처 : 원주결련택견 http://cafe.daum.net/wonjuteakyun/ApD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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