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90년대에는 백업씨디라는 것이 있었다.

시장 으슥한 속의 좌판에 보면 으레 아무것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씨디들을 팔고 있었다. 그곳에는 각종 게임들이 용량을 줄여서 씨디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고전게임 정도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씨디 복사를 쉽게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100만원이 넘는 고가의 기계가 필요했다. 그때 돈으로 100만원이면 거의 한달 수입 보다도 많은 큰 돈이었다. 이 기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IT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었다. 그때는 서울대 컴퓨터과가 법대와 의대보다도 컷트라인이 높았던 세상이었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어서 게임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고 게임에 목마른 사람들은 친구들이나 삼촌들의 '어디어디에서 빽업씨디를 판다더라' 하는 입소문을 타고 으슥한 곳들로 좌판을 찾아 다녔다.

물론 불법이었기 때문에 단속이 뜨면 좌판을 사라졌다 생기기를 반복하는 5일장을 방불케 했다.

보통 백업씨디는 2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말 그대로 정품 씨디의 복사본이다. 당시에는 정품제품을 사면 메뉴얼에 암호가 들어있었는데 이것으로 정품인증을 대신했다. 복사가 어렵게 하기 위해 옅은 노란색 등으로 수많은 난수가 인쇄되어 있는데 백업장사꾼은 그걸 일일이 손으로 타이핑해서 백업씨디를 살때 동봉해 주었다. 정말 눈물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게임파일 중에 별로 중요치 않은 파일이나 용량이 큰 음악파일 (당시에는 mp3라는 포멧이 없었기 때문에 음악파일의 용량이 매우 컸다. 게임 자체의 용량을 넘어가기도 했다.) 등을 삭제하고 구동만 되게 한 용량줄인 게임들을 20개에서 40개 정도 모아서 씨디에 복사해 파는 것 이었다. 이것이 특히 인기가 있었다. 이 백업씨디 한장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오죽했으면 집에 CD-ROM 드라이브가 없는 사람들은 백업씨디를 플레이하기 위해 큰 돈을 주고 구입하기도 했다.

이런 인기를 반영한 듯 어느 출판사에서는 97년도에는 고전게임 핸드북이라는 작고 굵은 게임 공략책이 서점에서 팔리기도 했다. 크렉이나 에디터 프로그램이 들어있는 mini-CD 를 동봉해서 사람들의 구매욕구를 부추겼다. 나도 이때 mini씨디를 처음 보았다.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 '씨디가 이렇게 작아질 수 있다니!!!'

격번의 90년대 이러한 백업씨디 장사로 큰 돈을 번 사람들이 존재한다. IT선두주자였고 컴퓨터 유저들의 희망이 되었던 이들은 그러한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게되고 IT선진국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섰다. (DC inside의 김유식 사장이 백업씨디 장사로 사업을 시작했다는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백업씨디 좌판은 값이 싼 CD-RW 드라이버가 나오고 인터넷이 차차 퍼지면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백업 게임의 붐은 훗날 와레즈 싸이트가 생겨나며 명맥을 이어나가게 된다. 초창기 인터넷의 붐은 다음에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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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초창기 IT인재들은 무엇을 하느냐?

안철수(V3, 안철수연구소), 김택진(아래아한글, nc soft), 이찬진(한글과 컴퓨터, 드림위즈), 김범수(NHN), 김정주(넥슨), 송재경(바람의나라, 리니지, 아키에이지), 황창규(전 삼성전자 사장, 황의 법칙 등) 등등의 수많은 인재들이 지금도 활발히 활동중이다.

(김택진과 이찬진은 아래아 한글(전 한글오피스)을 공동 개발 했다.)

대한민국 컴퓨터 역사의 3대 영웅, 김택진 안철수 이찬진 … 리니지의 김택진은 '부'를 얻었고 백신 박사 안철수는 '명예'를 얻었고 한글과 컴퓨터 이찬진은 '미인'을 얻었다던가. 하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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